의대생 ‘등록 후 투쟁’, 응급환자 가족이 바라본 현실

2024년 겨울, 저는 가족의 응급 상황을 두 차례 겪었습니다. 병명은 각각 복강 내 출혈, 41.5도에 가까운 고열로 인한 의식 소실이었습니다. 극심한 복통으로 인해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 가족과, 고열로 인해 의식이 소실된 어린 아이, 그리고 환자를 앞에 두고 응급실을 수배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구급대원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박힌 듯 잊혀지질 않습니다. 몇 군데의 대형 병원에 연락했지만 의료 파업으로 인해 응급실에 입원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오기를 몇 시간, 결국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 한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참담한 경험은 그저 운이 나빠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집단적 거부가 만든 인재(人災)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의대생과 의료계의 집단 행동과 파급 효과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해 의대생들은 등록 거부로 저항했고,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며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의대생들의 행동은 단순한 학생 운동에 그치지 않고, 전공의와 일부 개원의들의 집단 행동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전공의 9,000여 명의 사직서 제출과 진료 거부는 중환자 치료, 암 수술, 신생아 집중 치료 등 중대한 의료 서비스를 마비시켰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수술 일정이 지연되어 암 환자가 숨졌고, 지방 병원에서는 의사 부재로 응급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중증으로 전이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의대생들과 의사 단체는 처음부터 ‘의대 증원은 무자격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허위 정보를 양산하며 국민 불안을 자극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반대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집단 행동이었습니다. ‘공공성’을 말하면서도 국민의 절박한 현실에는 눈을 감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대 증원 이후에도 의사 면허 제도는 여전히 국가시험이라는 철저한 검증을 거치게 되며, OECD 국가들은 이미 한국보다 훨씬 많은 의사를 배출하고도 의료의 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집단 행동 뒤에 숨겨진 특권 의식
이러한 행동의 이면에는 뿌리 깊은 특권 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의대생들은 자신들이 ‘사회적 엘리트’라는 정체성을 당연하게 여기고, 의료 정책 결정에 대중의 의견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의료계는 법적 책임마저 면피하려 했고, 이는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행태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드러난 그들의 위선 또한 아쉬웠습니다. 메디게이트나 블라인드,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온 의사 집단과 의대생의 글을 보면 소위 ‘밥그릇’을 지키려는 속내가  보이는데, 겉으로는 ‘의료 품질 저하’니 ‘국민 건강’이니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는 위선이 저를 포함한 일반 국민들이 가장 아쉽게 느꼈던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장사꾼이 돈 더 벌겠다고 시위하면 불편할 수는 있어도 밉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본인들의 업의 본질에 솔직하기라도 하니까요. 근데 의대생들과 의사 집단은 장사꾼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성자처럼 행세하려 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순된 명분과 전략적 후퇴
초기 등록 거부로 강경한 메시지를 던졌던 의대생들은, 대학의 제적 경고 앞에서 대오를 바꿨습니다. 다수는 등록을 선택하고, 이후 휴학과 수업 거부로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은 공공성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개인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적 후퇴에 가깝습니다. 만약 의대생들의 주장처럼 ‘의료 교육의 질’과 ‘환자 안전’이 핵심이었다면, 제적을 감수하고서라도 끝까지 입장을 고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손해 앞에서 쉽게 입장을 바꾼 것은, 그들이 내세운 명분의 허약함을 스스로 입증한 셈입니다.

 

정부의 책임과 의료 구조의 문제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학생들의 반발’이 아니라, 의료계 전반에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의 표출입니다. 수십 년간 동결된 의대 정원은 의사를 ‘희소 직종’으로 만들었고, 고소득·고지위의 엘리트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틀 안에서 자란 의대생들은, 환자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기득권 수호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들은 아직 의료 현장에 나서지도 않았지만, 환자의 고통보다는 자신들의 미래 경쟁 구도와 경제적 안정을 더 걱정합니다. 의료 교육이 전문성과 윤리보다 ‘특권 계승’에 집중된 결과가 지금의 투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정부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정책 실행 이전에 의료계와의 충분한 대화와 지역 의료 기반 확충 계획은 분명히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방향성 자체는 분명합니다.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구조 확장, 그것이 의대 증원의 핵심입니다.

 

마무리: 누구를 위한 의료인가?
의대생들의 투쟁은 이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점차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 앞의 이익을 위협하는 대학들의 엄포에 단일대오도 서서히 붕괴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들이 되묻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지키려는 의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응급실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는 대답을 내놓을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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