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원두 한 잔 값은 100원, 120원밖에 안 합니다.”
모 후보의 이 발언은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매일같이 사 마시는 커피 한 잔 가격이 5,000원을 훌쩍 넘는 시대에, 원두 원가가 고작 100원 남짓이라는 주장은 많은 이들에게 “우리가 폭리를 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이 발언 이후, 커피 프랜차이즈 본사의 과도한 이윤이나 복잡한 유통구조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처럼 원재료 가격과 최종 소비재 가격 사이의 큰 간극을 지적하는 것은 대중의 즉각적인 공감을 얻기 쉽다. 그러나 이 ‘120원 커피론’이 과연 커피 한 잔 가격의 본질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을까? 혹은, 경제 현상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함으로써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측면은 없을까? 이 글에서는 커피 한 잔 가격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120원’이라는 숫자 뒤에 가려진 다양한 경제적 요인들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1. ‘원두 120원’의 함정: 원재료비 너머의 직접 비용들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원가’의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에는 단순히 원재료비만 포함되지 않는다.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투입되는 직접적인 비용만 해도 상당하다.
원두 자체의 복잡성: ‘120원’이라는 원두 가격조차 사실은 단순화된 수치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품종의 생두를 사용하는지(아라비카, 로부스타 등), 생두의 원산지(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브라질 등), 등급, 가공 방식(워시드, 내추럴 등)에 따라 생두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여기에 로스팅 과정에서의 중량 손실(생두 1kg을 로스팅하면 약 15~20%가 줄어든다), 로스팅 기술과 설비 투자 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제 사용 가능한 ‘로스팅된 원두’의 원가는 상승한다. 스페셜티 커피로 갈수록 이 원가는 더욱 높아진다.
임차료: 커피전문점 사업의 가장 큰 비용 중 하나는 단연 임차료다. 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역세권이나 중심 상업 지구의 경우, 월 수백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임차료는 고스란히 최종 판매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서울 시내 주요 상권의 10평 남짓한 소규모 카페의 월 임차료가 300만 원이라고 가정하고, 하루 100잔의 커피를 판매한다면, 임차료만으로도 잔당 1,000원의 비용이 추가되는 셈이다.
인건비: 바리스타의 숙련된 기술과 서비스는 커피의 품질과 고객 만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바리스타의 급여, 4대 보험, 퇴직금, 교육 훈련 비용 등 인건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고정 비용이다. 최저임금 수준으로 계산하더라도, 직원 1~2명을 고용하는 매장의 경우 인건비 부담은 상당하다.
기타 직접 비용: 우유, 시럽, 파우더 등의 부재료비, 일회용 컵, 컵홀더, 뚜껑, 빨대 등의 포장재 비용,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의 공과금도 매일같이 발생하는 직접 비용이다.
이처럼 단순히 ‘원두 값 120원’만으로는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직접 비용조차 설명하기 어렵다. 이러한 요소들을 제외하고 원두 가격만으로 최종 가격의 적정성을 논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 가격을 철판 값만으로 따지는 것과 유사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2. 보이지 않는 비용: 간접비와 가치 창출의 경제학
직접 비용 외에도 커피 한 잔 가격에는 다양한 간접 비용과 부가가치가 포함된다.
설비 투자 및 감가상각: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에스프레소 머신, 그라인더, 제빙기, 냉장/냉동고 등의 초기 설비 투자 비용과 이들 설비의 감가상각 비용, 유지보수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마케팅 및 운영비: 브랜드 홍보를 위한 마케팅 비용, 카드 수수료, 세무기장료, 각종 세금(부가가치세, 소득세 등), 청소 및 위생관리 비용, 폐기물 처리 비용 등 매장 운영을 위한 간접비도 꾸준히 발생한다. 프랜차이즈의 경우 본사에 지불하는 가맹비와 로열티도 추가된다.
서비스와 경험이라는 부가가치: 소비자들이 커피전문점에서 구매하는 것은 단지 ‘커피’라는 음료만이 아니다. 숙련된 바리스타가 제공하는 전문적인 서비스,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 무료 와이파이, 만남과 휴식의 장소로서의 가치 등 무형의 서비스와 경험 또한 중요한 구매 요인이다. 이러한 부가가치는 단순 원재료비로는 환산할 수 없으며, 소비자의 지불 의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많은 소비자들이 단순히 저렴한 커피보다는 자신이 선호하는 분위기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에 기꺼이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한다.
결국 커피 한 잔의 가격은, 원두라는 원재료에 노동, 자본, 기술, 서비스, 공간의 가치가 단계적으로 더해지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이 복잡한 가치 사슬을 무시하고 특정 원재료 가격만을 부각하는 것은 경제 현상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3. 시장 경쟁과 가격 결정의 현실
만약 ‘120원짜리 원두로 만든 커피를 5,000원에 파는 것이 정말 엄청난 폭리’라면, 경제학적 관점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져야 할까? 당연히 수많은 경쟁자들이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하여 기존 사업자들의 이윤을 잠식하고 가격 경쟁을 촉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도 자영업자 비율이 높고, 커피전문점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선 극심한 경쟁 상태에 놓여있다. 동네 골목마다 여러 개의 카페가 경쟁하고 있으며, 대형 프랜차이즈부터 저가 커피 브랜드, 개인 카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대다수의 영세 자영업자들은 오히려 낮은 수익률과 높은 폐업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커피전문점을 포함한 음료점업의 5년 생존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커피 한 잔의 가격이 단순히 ‘원두 값 + 폭리’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임차료, 인건비, 경쟁 강도, 브랜드 가치, 소비자 수요 등 복합적인 시장 요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됨을 시사한다. 물론, 일부 독과점적 지위를 가진 대형 프랜차이즈의 경우 높은 이윤을 얻을 수도 있겠으나, 이를 일반화하여 모든 커피 가격이 부당하게 책정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4. 정치적 수사와 경제적 현실 사이의 간극
그렇다면 왜 ‘120원 커피론’과 같은 주장이 등장하고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일까? 이는 복잡한 경제 문제를 단순 명료하게 설명하여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려는 정치적 수사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높은 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당신들은 부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즉각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특정 집단(예: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조성하기 용이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화된 접근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커피 가격 안정화를 위해서는 원두 수입 유통 구조 개선, 과도한 임차료 문제 해결,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 지원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원두 값이 싸니 커피 값도 싸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고, 자칫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에 대한 오해를 확산시킬 수 있다.